
솔직히 저는 임신했을 때까지도 아기가 "엄마"라는 말을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저를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TV에서 보던 그 장면처럼요. 그런데 실제로 겪어보니 언어 발달은 그런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아주 작고 소소한 소리들이 쌓여가는 긴 과정이었습니다.
아기 옹알이 시작, 쿠잉단계의 특징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처음 몇 달은 울음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생후 두 달 무렵부터 "아~", "우~"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히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시기의 소리에는 쿠잉(cooing)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었습니다. 쿠잉이란 생후 2~4개월 무렵 아기가 "아", "우", "오" 같은 모음 중심의 소리를 내는 초기 발성 단계를 말합니다. 말을 배우기 전에 자신의 목소리 자체를 탐색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시기가 생각보다 꽤 깁니다. 어느 날은 소리가 많았다가, 다음 날은 또 조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늘은 왜 안 하지?' 하고 괜히 신경 쓰인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아기가 소리를 내다가 멈추는 것도, 조금씩 다른 음높이를 시도하는 것도 모두 발성 근육을 익히는 연습이었으니까요.
이 단계에서 제가 놀랐던 건 아기가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데도 혼자 한참 동안 중얼거린다는 점이었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며 혼자서 소리를 내고, 잠깐 멈췄다가 또 내고. 도대체 누구와 대화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바바바"가 들리던 날, 정형옹알이
생후 6개월 무렵부터는 소리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아~", "우~" 수준이 아니라 "바바바", "다다다", "마마마"처럼 자음과 모음이 결합된 반복적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언어발달 전문가들은 정형 옹알이(canonical babbling)라고 부릅니다. 정형 옹알이란 자음과 모음이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음절 구조를 갖춘 옹알이를 의미하며, 이 단계부터 본격적인 언어 습득의 준비가 시작됩니다.
"마마마"가 들리던 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디어 저를 부르는 건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지켜봤더니 저를 보고도 "아빠", 아빠를 보고도 "마마마", 장난감 앞에서도 "다다다"를 하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났습니다. 아기는 저를 부르는 게 아니라 소리 자체를 연습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 경험상 이 시기에 한 가지가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반응할수록 옹알이가 늘어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기가 "마마마" 하면 저도 따라 했습니다. 그러면 아기가 웃으면서 또 다른 소리를 냈습니다.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옹알이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생후 6개월 무렵 아기가 보호자와 소리를 주고받고 다양한 소리로 의사소통하려는 모습을 중요한 언어 발달 신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출처: CDC). 이 시기에 체크해 볼 핵심 신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보호자가 소리를 내면 아기도 소리로 반응하는지
- 다양한 음높이와 강약으로 소리를 변화시키는지
- 입술과 혀를 움직이며 새로운 소리를 시도하는지
- 혼자 있을 때도 자발적으로 소리를 내는지
이 네 가지가 자연스럽게 보인다면, 아기는 언어 발달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언어 발달기준, 어디까지 참고할까
생후 10~15개월 무렵이 되면 옹알이가 점점 말처럼 들리기 시작합니다. 억양이 길어지고 마치 실제로 대화하듯 말하는 자곤(jargon) 단계가 나타납니다. 자곤이란 실제 단어는 아니지만 억양과 리듬이 실제 말처럼 들리는 옹알이 후기 단계를 말합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엄마", "아빠", "맘마" 같은 진짜 첫 단어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시기에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아이의 발달이 아니라 SNS였습니다. "7개월인데 엄마 비슷하게 불러요", "8개월인데 아빠 알아봐요" 같은 글들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아이가 뒤처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불안이 생각보다 꽤 자주, 꽤 오래 지속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온라인에 올라오는 순간들은 대부분 발달이 빠른 순간, 특별한 순간만 기록된 것들입니다. 반대로 몇 주째 아무런 변화가 없는 시기나 부모가 답답함을 느끼는 과정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평균적인 과정은 그냥 기록이 안 되는 겁니다.
언어 발달에는 개인차(individual variation)가 큽니다. 개인차란 같은 개월 수의 아기들 사이에도 발달 속도와 방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어떤 아이는 소리를 많이 내고, 어떤 아이는 표정과 행동으로 더 많이 표현합니다. 어떤 아이는 조용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단어가 한꺼번에 늘어나기도 합니다. CDC는 9~10개월이 되어도 옹알이가 거의 없거나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소아청소년과 상담을 권장하며, 단순히 발달이 느린 것만으로 문제를 단정하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CDC).
발달표는 합격선이 아니라 평균을 알려주는 참고자료입니다. 아이가 몇 개월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기준을 목표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아이를 관찰하는 게 아니라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는 일이 됩니다. 그 순간부터 육아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첫 단어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언어 발달은 그 훨씬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중에 듣게 될 진짜 "엄마"보다도, 그 전에 수없이 반복했던 "엄마엄마엄마엄마"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지금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보호자와 소리를 주고받으려 하는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개월 수보다 그 과정 자체를 함께 보는 것이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발달에 대한 구체적인 우려가 있으시다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상담하시길 권장합니다.